현 정부가 2024년 2월경 2000명 규모의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자 의사 및 의대생들은 이를 반대하며 집단행동에 나섰고 200일이 넘은 현재까지도 갈등은 봉합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총선용 화두였다는 애초의 평가와 다르게 총선이 끝난 지 한참 지났지만 의사, 정부 어느 한 측도 물어 서지 않을 분위기다.
대한민국의 의과대학 정원은 2006년부터 3058명으로 고정되어 있고 변동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3.7명보다 훨씬 적다.
거기에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필수의료 붕괴까지 고려해보면 의사 수를 어느 정도 늘려야 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국민은 많이 없었다.
하지만 2000명이라는 파격적인 숫자가 어떤 근거로 산출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점차 커져갔고 전공의들이 대학병원으로 복귀하지 않아 의료공백이 점차 커져가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의사를 ‘천룡인(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일종의 귀족계층)’으로 묘사하며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과도한 수준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조롱섞인 비판을 한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의사가 된 것이 정말 맞느냐는 것이다.
간혹 의사들이 이 나라 의료가 걱정된다는 목소리를 내면 이미 기득권이면서 어디까지 바라는 것이냐는 비판,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기 일쑤이다.
이런 비판을 보면 1831년에 출간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이 책에서 논쟁에서 논리적으로 승리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여기서 초점은 ‘이기는’에 맞추어져 있다. 과정은 어찌되든 간에 논쟁에서 이기면 상관없다는 것이다.
방법들을 세세하게 살펴보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가령 “확대해석하라”,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어라”, “의미 없는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 내라”, “상대가 너무나 우월하면 인신공격을 감행하라”등이 있다.
이런 방법들을 사용하면 당장의 논쟁, 토론에서 승리할 수는 있지만 결코 유의미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만 깊어지고 이후 생산적인 대화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얼굴을 마주보고 토론을 하다보면 감정적이게 될 수 있고 언성이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논쟁 자체만을 위한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 있다는 것을 서로 인지하고 있으면 이런 불필요한 감정싸움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설득해야 할 대상이 아닌 싸워 이겨야 한다는 대상으로 보면 대화가 불가능할 것임은 자명하다.
갈등이 장기화됨에 따라 한쪽의 일방적인 굴복은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더더욱 현 의정갈등을 대화와 토론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의정갈등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을 맞아 앞으로는 서로 헐뜯기보다 생산적인 대화를 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