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화순 고인돌 공원에 다녀오면서 한반도의 고인돌 문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강화, 고창, 화순의 고인돌은 단지 선사시대 유물이 아니다. 수백 톤에 이르는 돌덩이를 수많은 사람이 함께 옮기고 세운 ‘집단의 유산’이다. 행정도 계약도 없던 시대에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힘을 모았다.
바로 ‘상부상조’였다. 각자의 이익이 아니라 모두의 안녕을 위해 거대한 돌을 옮겼다.
이 고인돌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는 시간의 증언이다.
복잡한 시스템 없이도 가능했던 연대의 정신은 오늘날 복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다.
누군가가 고통받을 때 ‘제 몫이 아니니 모른다’ 하지 않고 함께 무게를 나누던 자세 이것이 복지의 시작이다.
경기북부는 수도권이라는 지리적 인식과 달리 지역 복지 인프라나 접근성 면에서는 여전히 낙후된 곳이 많다. 도농복합, 군사시설 인접, 접경지대라는 복합 조건이 겹치며 복지 격차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특히 초고령사회 진입 속도가 빠르며 청년층의 지역 이탈 또한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일수록 제도적 복지 외에 공동체 기반의 실천이 절실하다. 고인돌을 만들던 사람들이 제도를 기다리지 않았듯 오늘의 지역사회도 스스로 복지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마을 단위의 돌봄, 지역 농산물과 연계된 먹거리 지원, 주민 참여형 사회안전망 등은 모두 ‘함께 만드는 복지’의 실천적 형태다.
고창 들녘에 눕혀진 거석을 보면 누군가의 개인적인 영광이 아니라 공동체의 노력이었음을 느낀다. 돌 하나를 세우기 위해 물을 길어 바닥을 다지고 나무를 깔고 끈으로 당기고 노래로 호흡을 맞췄다.
복지도 같다. 예산을 나누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모으는 일이다.
복지관, 주민센터, 지자체가 아무리 많은 제도를 마련해도 이웃 간 관심이 없으면 복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관계’에서 복지가 시작된다. 마을 청년이 어르신 도시락을 배달하고 그 과정에서 안부를 묻고,농부는 직접 기른 채소를 보태며 소상공인은 소액을 후원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고인돌이다.
화순의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고인돌 무덤군은 수백 년을 견디며 공동체의 기억을 지켜왔다. 경기북부도 그러한 복지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라 능동적 참여자가 복지를 이끌어야 한다. 마을회의에서 복지 의제를 제안하고 청소년이 지역활동에 나서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할 때 행정은 그 뒤를 따르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복지는 행정의 몫이 아니다. 주민이 함께할 때 비로소 복지는 삶으로 작동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기술이나 예산이 아니라 오래된 연대의 감각이다. 무거운 돌을 함께 옮기던 선조들의 호흡과 시선, 바로 그것이 지금의 경기북부에 필요한 복지 자산이다.
강화의 고인돌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바람 속에 햇살 속에 잊히지 않는 연대의 상징으로 서 있다.
복지도 그래야 한다.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 곁에 머물며 함께 살아가는 삶을 지탱해야 한다. 그 무게는 크지만 함께 나누면 버틸 수 있다.
고인돌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일,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경기북부 복지는 이제 그 마음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오래된 돌에 새겨진 미래의 지혜 그 고인돌적 정신으로 오늘의 삶을 세우자. 그것이 이 지역을 살리는 가장 강력한 복지정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