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환단고기 위서 논쟁이 한창이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논란은 그 전에도 있었다.
필자는 군복무시절 삼국사기와 조선상고사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1990년 3월 복학하여 환단고기를 읽은 다음 사기와 열전 그리고 열국지를 읽었다.
어느 날 경남대 대학원 도서관에서 역사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송씨를 만나 환단 고기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는 담당 교수가 그 책이 위서라고 했다며 한사코 믿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역사서의 개인 소장을 금지시켜 이 책이 필사되어왔지만 단재 신채호 선생이 지적한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의 누락 된 초기 역사와 삼국유사에서 해부루가 가섭원 부여로 천도하는 전후 과정의 맥락을 연결해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후에 그는 교수가 되어 TV역사스페셜에 잠깐 출연했었는데 이들처럼 이 책의 단군조선과 부여, 고구려 초기 역사에 대한 부정론자들은 고구려, 발해의 연호 등 기존 사료 및 비문과 일치하는 내용도 어느 책에서 베꼈다, 일제시대 사용하던 용어가 있고 삼황오제 시대 치우천왕과 헌원의 탁록대전은 승자가 다르니까 위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후 일식 등 천문 현상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고 영고탑지명은 발해국(7C~10C 초) 지도에도 나오며 근대적 용어는 원문 번역상의 차이일 뿐만 아니라 대야발의 저서 <단기고사> 번역본을 이 책 <단군세기>에 나오는 용어로 속이고 비판한 것임이 밝혀졌다.
언어는 시대마다 변화한다. 따라서 일제시대에 발표된 소설도 지금 재간행하면서 시대에 맞게 수정하듯 역사적 사실은 못 고쳐도 지명과 용어는 적절한 표현으로 고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환단고기에는 압록강과 요하, 패수 등 고대의 강과 낙랑, 왕검성, 장당경 등 고조선의 지명이 현재의 중국내 지명으로 각주되어 있다.
그런데도 삼국시기와 사기를 읽지 않은 사람들은 이를 무시하고 단군을 신화로 만든 일제식민사관을 고수했던 이병도 교수일파의 학설 즉 위만조선멸망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한사군을 한반도에 설치했다는 주장은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는 적봉시의 우하량(여신묘, 여신두상), 하가점하층(비파형동검 등 초기 청동기 유물 출토)문화 유적과 영토문제 때문에 고조선, 부여, 고구려사를 중국 지방 정권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 동북공정에 이로움을 줄 뿐이다.
환단고기는 조선시대 사대주의자들 몰래 필사하여 비장해온 책으로 홍산문화의 주인공인 동이족 즉 예족, 맥족이 우리 선조임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역사 증거자료이다.
그 예로 이 책은 환웅이 곰이 변한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삼국유사의 단군신화 이야기를 곰을 숭배하는 웅족(맥족)의 단군왕검이 신석기시대부터 만주, 요서, 한반도에 거주해오며 호랑이를 숭배하던 선주 민족인 예족을 통합해 세운 나라가 바로 고조선임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역년 1908년은 고조선이 BC2333년 건국하여 중국이 전국시대로 접어들 무렵인 425년에 국호를 대부여로 고치고 (신채호가 언급한) 삼조선으로 분리될 때까지 역대 단군왕조의 통치 기간이다.
이처럼 환단고기는 우리의 고대 역사와 당시 중국 역사를 알고 읽어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책이다. 따라서 한, 중 고대사에 무지한 사람들이 중국 동북공정의 허구성을 입증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 이 책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