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公論)
상태바
공론(公論)
  • 한북신문
  • 승인 2026.03.27 0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정덕 논설주간·양주문화원 양주학연구소장
홍정덕 논설주간·양주문화원 양주학연구소장

1613년 광해5년 5월13일자 실록기사에는 박응서의 역모에 인목왕후의 친정아버지 김제남이 연루된 사실에 관하여 이 기사를 작성한 사관의 시론이 첨부되어 있다. “아! 십여 인이 큰일을 모의하면서 어떻게 삼중으로 논의를 하며 서로들 모르게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서양갑이 공초하면서 아무리 교묘하게 얽어 들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윤남과 논의한 시말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그가 한 번도 김제남을 만난 사실이 없었고 보면 김제남을 역적의 괴수라고 하는 것도 허탄한 일이다.”

광해군이 곡절 끝에 왕위에 올랐지만 그는 부왕 선조의 서자 그것도 차남이었고 친형 임해군과 적장자 영창대군이 있었다. 이들을 자기 왕권의 걸림돌로 여기고 있는 광해군의 심사를 헤아린 대북 정권은 영창대군을 제거할 목적으로 먼저 외조부 김제남을 역모로 몰았다. 이에 조정은 물론 재야까지 전체가 김제남과 영창대군을 죽이고 대비를 폐서인하는 일에 경쟁적으로 나서게 된다.

이른바 공론(公論)이었다. 광해 5년 5월6일 사간원과 사헌부의 합계로 김제남 처벌을 상소한 것을 필두로 5월28일까지 총 14차례 처벌을 강력히 상주하였고 결국은 그가 죽임을 당하는 5월30일까지 불과 20여일에 김제남, 영창대군 처벌 상주가 총 30회에 이르렀다.

이처럼 빗발치는 공론에 대하여 광해군은 5월 28일 합사하여 세 번째 아뢰니 답하기를 “내가 모두 말하였으니 굳이 고집하지 말라. 김제남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차마 형신하며 국문하지 못하겠는데 공의가 이러하니 사사(賜死)하는 것이 좋겠다” 하며 마치 마지 못하는 듯 이 공론을 받아들였고 김제남은 사형, 영창대군은 강화로 유배되는 차디찬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공론은 리더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공유하는 언론의 가치이다. 결코 시세에 아부해서도 자기의 이익에 편승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광해군의 심중을 헤아려 들불처럼 일어났던 1613년 5월의 공론은 결국 광해군을 폐위로 몰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의 준엄한 폄훼를 받는 오론(汚論)으로 기록에 남게 된다.

인목대비는 인조 반정군에 붙잡혀와 대비 앞에 무릎 꿇은 광해군 앞에 인조에게 대보를 넘겨주며 다음과 같이 꾸짖는다.

“내가 아무리 덕이 부족하더라도 천자의 고명을 받아 선왕의 배필이 되어 일국의 국모 노릇을 한 지 여러 해가 되었으니 선조의 아들이라면 나를 어머니로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광해는 남을 참소하고 모해하는 자들의 말을 신임하고 스스로 시기하고 혐의하는 마음을 가져 우리 부모를 형벌하여 죽이고 우리 일가들을 몰살시켰으며 품속에 있는 어린 자식을 빼앗아 죽이고 나를 유폐하여 곤욕을 치르게 하였으니 그는 인간의 도리가 조금도 없는 자이다.”

그가 이러한 짓을 한 것은 선왕에게 품었던 유감을 풀려고 한 것인데 미망인에 대해서야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그는 형과 아우를 살해하고 조카들을 모조리 죽였으며 서모를 때려 죽이기까지 하였다. 역사는 창천에 남아 우리를 내려 보고 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