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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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은 말한다!
  • 한북신문
  • 승인 2026.05.1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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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양주문화원 양주학연구소장
홍정덕 양주문화원 양주학연구소장

영조 20년 8월29일 지평 박성원이 모두 11개 조에 달하는 절박한 상소를 왕에게 올린다.

아직 전례에 마땅한 연령에 이르지 아니하였는데 왕을 기로소에 들도록 논의한 일의 잘못을 지적하고 단지 현직 판서의 조카인 제도 사관(史官)에 임용된 서지수, 조재민을 당장 파직할 것, 국왕의 친척이라 하여 성균시에서 발탁한 임석헌을 도태시킬 것, 역적 남태진과 동행한 혐의가 있는 박찬신을 파직할 것, 충원현감 이명곤의 비리를 발견하고도 묵과한 암행어사 윤관소를 파직하고 이명곤을 수사할 것, 현직을 이용하여 사익을 취한 광주부윤 서명형을 체포할 것 등을 사안마다 그 사유를 적시하며 강력히 요망하였다.

그런데 이 상소는 국왕 영조의 역린을 건들이고 말았다.

비리를 저지르고 부정한 방법으로 고위직을 얻어낸 관리들을 규탄하는 상소의 첫 항에 국왕 영조가 아직 적절한 나이에 이르지 아니하였는데도 기로소에 들어가려하는 거조를 비판하였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실록은 진노한 영조의 대응을 이렇게 기록한다.

‘… 조신(朝臣)이 혹시 비슷하지도 않은데 기사에 들어가는 자가 있다면 이것을 반박하더라도 좋겠지만 네가 감히 인군(人君)이 기사에 들어가는 것을 반박하는가? 존호의 여덟 글자는 어찌하여 반박하여 바로잡지 아니하고 곧 이처럼 계달하는가? 하고 그 계본을 일일이 들추어서 몹시 꾸짖었다. 박성원이 마음 속에 품은 생각을 전달하고자 청하였으나 임금이 그의 관직을 체차하라고 명하(였다)”

이 상소문을 작성한 지평 박성원의 간절한 상소는 전혀 채용되지 않은 채 박성원은 해도에 유배되고 만다.

이 실록 기사의 말미에는 이 기사를 작성한 사관(史官)의 다음과 같은 사론이 첨부되어 역사적인 평가를 남긴다.

사신은 말한다. “박성원은 임금과 소원한 신하로서 감히 말하기를 꺼리지 아니하였으니 비록 그 마음이 과연 공의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그 기백은 숭상할 만하고 그 말도 또한 취할 만한 것이 많았는데 특히 한마디 말이 임금의 뜻을 거슬렸기에 그 몸은 귀양가고 그 말을 쓰여지지 못하였으니 애석한 마음을 이길 수가 없다. 아! 이 세상을 돌아보건대 당파가 없는 사람을 어찌 얻을 수가 있겠는가? 다만 그 말의 시비를 보아서 취사하는 것이 옳을 터인데 어찌 당인이라고 지목하여 그 말을 다 버릴 수가 있겠는가? 조명겸의 무리는 하나같이 의금부에 나아갔으나 곧 모두 죄가 없다고 밝혀졌다.”

그러나 박성원이 논한 바가 어찌 다 허망한 말이겠는가? 시국의 논쟁이 근본의 경계에 이르고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당국자의 본분은 여야 당파의 주장을 진영논리로만 대응하지 말고 그 말이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것은 다수가 아니라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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