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은 세자 시절 승휘 권씨에게서 딸 경혜공주와 아들 단종을 얻지만 승휘 권씨는 1441년(세종 23년) 7월23일 단종을 낳은 바로 다음 날 산욕열로 세상을 떠난다, 1452년 문종이 승하한 후 단종은 12살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지만 어린 왕의 배후에서 그를 위하여 수렴청정을 해주어야 할 어머니의 존재가 없었던 것이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결국은 영월 유배지에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결정적인 정치적 배경이 된다.
정치적 야심이 만만치 않았던 인수대비는 아들 성종의 원비 윤씨를 폐서인하여 궁 밖으로 내쳤다가 결국 사약을 내려 사사하였다. 1479년 어머니 윤씨가 궁중에서 폐출된 후 아들 연산은 홀로 궁에 남겨졌고 비록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의 돌봄이 있었다하여도 연산군이 정현왕후의 아들인 이복동생 진성대군을 몹시 핍박한 사실을 감안하면 어머니 폐비 윤씨의 부재는 그의 정상적인 성장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고 어머니의 죽음과 성장과정에서 어머니의 부재는 그의 성격을 극단으로 몰아가 결국 그를 전대미문의 폭군으로 몰아가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영조는 한평생 지극한 정성으로 어머니 숙빈 최씨를 왕비로 추숭하려 하였지만 신하들의 적극적인 반대로 번번히 실패하였고 영조는 그때마다 종묘에 가서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는 일화는 그가 왜 아들 사도세자를 그렇게 잔혹하게 죽였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모든 사안의 내면에는 자녀의 양육에 끼치는 어머니의 존재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지를 설명하는 단초들이 내재 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분리된 곳에서 자야 하는 미국의 아이들이 겪는 분리불안이 그들의 정서와 성격 형성에 얼마나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지 가정의 형성과 유지, 자녀 양육에 끼치는 영향은 또 얼마나 부정적인지는 이미 여러 심리학적, 교육적 통계와 각종 실험 자료들이 명백히 입증하고 있다.
‘친밀’은 나와 상대가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이에 바탕하여 이해 관계를 넘어 가치를 공유하는 인간관계의 기본 요소인데 사실 한자로 표현된 ‘친밀(親密)’을 문자 그대로 풀어 읽으면 ‘어머니(親))와 내가 함께 느끼는 밀접하고 비밀스러운(密) 감정’이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 안에서 느끼는 편안함, 어머니와 눈을 맞추며 웃는 행복함, 어머니의 존재를 인식하며 누리게 되는 자신감,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배우는 자아와 존재 의식이 바로 성장하며 맞이하는 모든 상대방과의 관계의 가본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지방선거 시기를 맞아 출마한 모든 도지사, 시장, 군수, 도의원, 시의원, 교육감들이 너도 나도 빠지지 않고 ‘돌봄’을 확대하고 ‘돌봄’의 내용을 보다 더 충실히 하겠다는 공약을 다투어 내놓고 있다. 일면 바람직해 보이고 유권자의 욕구와 요구를 충족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엿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돌봄’이라는 것이 결국은 ‘부모와 가정 대신 기관에서 아이를 키우고 양육하겠다’는 것 아닌가? 부모가 일하느라 바쁘니 전문성 있는 기관에서 보다 더 전문적아고 치밀하게 아이들을 맡아 키우겠다는 것 아닌가?
현실괴 상황을 받아들이고 대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는 하여도 이 돌봄이 어머니의 품 보다 더 따뜻하고 넉넉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결코 생각되지는 않는다. 기우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