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경제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수퍼 사이클에 힘입어 전례 없는 외형적 호황을 누리고 있다.
증시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며 시가총액 1조 달러 클럽에 대한민국 기업 두 곳이나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 증시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1조 달러 클럽’ 멤버를 둘 이상 배출한 국가는 한국과 대만뿐이다.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일본 100대 대기업의 이익 총합을 추월할 것이라는 낙관론까지 가세하면서 우리 사회는 한껏 고무된 분위기에 취해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증시는 아직 정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불안한 장세를 연출하고 있는데, 화려한 숫자의 잔치 이면에는 대한민국 경제의 명운을 뒤흔들 독소들이 하나 둘씩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특정 산업 즉 반도체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도에서 비롯되는 이른바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의 징후다. 과거 1959년 네덜란드는 북해 유전 발굴로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했으나 특정 자원에만 의존한 결과 통화 가치가 급등하고 임금이 상승하면서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을 잃고 극심한 경제 침체에 빠졌던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역시 AI 투자 붐에 따른 반도체 착시에 가려져 있을 뿐 전형적인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 초입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즉 반도체라는 단 하나의 엔진이 멈추는 순간 경제 전체가 동반 붕괴할 수 있는 비정상적 양극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행태가 내일의 생존을 준비하는 ‘진부(眞富)’의 모습이 아니라 눈앞의 횡재에 눈이 멀어 미래를 탕진하는 ‘졸부(猝富)’를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반도체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영업이익 N% 성과급 잔치’가 대표적이다.
반도체는 노동 투입량보다 천문학적인 자본 투자와 초미세 공정의 기술력이 성패를 가르는 대표적인 기술·자본 집약형 산업이다. 오늘날의 호황은 현재의 구성원이 흘린 땀방울뿐만 아니라 지난 수년간 적자를 감수하며 연구개발(R&D)에 148조 원, 시설 투자에 230조 원을 쏟아부은 선제적 투자의 결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경영 판단의 영역인 영업이익 성과급을 노사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어 주주의 몫과 미래 세대의 재원은 물론 미래 투자재원을 현금으로 나눠 갖는 것은 당장 눈앞의 이익 공유에 눈이 멀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숙고해 볼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획일적이고 압축적인 한국식 보상 체계는 내부에 심각한 기형적 역차별과 사기 저하를 낳고 있기도 하다.
이 대기업 두 곳과 그 외 기업 간은 물론 두 대기업 내에서도 메모리 사업부의 고졸 생산직 직원이 거액의 성과급을 챙길 때 밤을 새우며 차세대 기술을 개발한 비메모리나 완제품(DX) 부문의 박사급 연구 인력은 사업부별 차등에 묶여 훨씬 초라한 보상을 받는 황당한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국가의 자원을 배분하고 미래를 통찰해야 할 정치권과 정부의 행태 역시 아쉬움은 없는가. 정부는 최근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두 회사의 4755조 원과 함께 총 800조 원 규모의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한 바 있다. 4755조 원은 무려 대한민국 1년 국가 예산의 6배가 넘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사업은 때가 있고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온 나라의 자원과 세금 대부분을 이 하나의 거대한 사업에 통째로 묶어두게 되는 것은 아닌지 진정한 의미의 생물학적·문화적 진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지금 ‘AI를 더 많이, 더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밈(meme, 관념)에 사로잡혀 국가의 영혼을 통째로 저당 잡히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그러나 거위 한 마리만 바라보는 경제는 튼튼한 경제가 아니다. 반도체에서 벌어들인 부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와 바이오, 로봇, 에너지, 방산, 농업기술과 창업 생태계로 확산돼야 한다.
초과 세수는 일상적인 복지와 선심성 사업에 소진하기보다 국가부채 축소, 기초과학 연구, 인재 양성, 미래산업 투자에 활용해야 한다.
갑자기 큰돈을 얻은 졸부는 돈을 자랑하지만 진정한 부자는 재산을 관리하고 다음 세대에 남긴다고 한다.
이제 다시 타고르가 예언한 ‘아시아의 등불이 다시 한번 켜져서 동방의 밝은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